70년의 동거 ― 두 가문의 영풍그룹
1949년, 두 동업자 —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 — 이 손을 잡고 영풍그룹을 세웠다. 70여 년간 암묵의 규칙은 단순했다. 영풍(주)은 장씨가, 고려아연은 최씨가 맡는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 아연 제련 기업으로 성장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러나 두 가문은 회사 지분을 서로 얽힌 형태로 나눠 갖고 있었다. 평화로울 땐 '동업', 틀어지면 '화약고'가 될 구조였다.
경영권 분쟁 Corporate Control Dispute
회사를 누가 지배·경영할지를 두고 주주·세력들이 다투는 일. 보통 이사회 과반과 주주총회 의결권을 누가 더 확보하느냐로 승패가 갈린다.
📰 기사 밀어내기 관점: 분쟁 국면에서는 양측이 동시에 보도자료를 쏟아내 비슷한 기사가 무더기로 생산된다 — 유사도 분석의 핵심 시기.
균열 ― 동업이 적이 되기까지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을 이끌며 신사업(2차전지 소재·신재생에너지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자, 장씨 가문(영풍 측)은 "본업과 무관한 투자로 회사 곳간을 비운다"며 반발했다. 배당·투자·인사 곳곳에서 두 가문의 셈법이 엇갈렸다.
최 회장 측은 외부 우군에게 신주·지분을 넘기며 우호지분을 넓혔고, 영풍 측은 이를 "내 몫을 희석시키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70년 동거의 신뢰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지분율 · 우호지분 Stake · Friendly Shares
지분율은 전체 발행주식 중 한 주체가 가진 비율. 우호지분은 표 대결에서 내 편을 들어줄 주주들의 지분 합이다.
⚖️ 경영권 분쟁은 결국 "내 편 지분 50%+1주"를 먼저 모으는 쪽이 이기는 게임. 그래서 모두가 단 몇 %의 지분에 사활을 건다.
선전포고 ― 영풍 + MBK의 기습
2024년 9월. 영풍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폭탄을 던졌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며 공개매수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최 회장 측의 동의 없는, 명백한 적대적 M&A였다.
공개매수 Tender Offer
불특정 다수 주주에게 "기간과 가격을 정해 장외에서 주식을 사겠다"고 공개 제안하는 방식. 단기간에 대량 지분을 끌어모아 경영권을 노릴 때 쓰는 정공법이다.
시장가보다 비싼 값(프리미엄)을 제시해야 주주들이 응한다. 그래서 공개매수가 시작되면 주가가 출렁인다.
적대적 M&A Hostile Takeover
대상 회사 경영진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인수합병. 우호적 M&A의 반대말.
사모펀드(PEF) · MBK파트너스 Private Equity Fund
소수 투자자(LP·출자자)의 돈을 모아 기업 지분 등에 투자하는 펀드. 운용·결정은 GP(운용사)가 맡는다. MBK파트너스는 김병주 회장이 이끄는 동북아 최대 PEF 중 하나.
PEF는 인수 후 기업가치를 키워 되팔아 수익을 낸다. "국가기간산업을 사모펀드가 가져가도 되는가"가 이 사건의 큰 쟁점이 됐다.
방패를 들다 ― 최윤범의 자사주 반격
최 회장은 가만있지 않았다. 회사 자금을 풀어 자사주 매입 형태의 맞공개매수에 나섰고,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을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적의 공격 물량을 회사가 직접 사들여 방패로 삼는 전략이었다.
자사주(자기주식) 매입 Treasury Stock Buyback
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자기 돈으로 사들이는 것. 핵심 포인트 두 가지:
①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잠자는 표). 하지만 ② 나중에 우호세력에 되팔면(처분) 다시 의결권이 살아난다 — 즉 '실탄 비축'이 된다.
시장 유통물량을 줄여 주가를 방어하는 효과도 있어, 공개매수 방어의 단골 전술이다. 자사주 소각(아예 없애 발행주식 수를 줄임)과는 구분된다.
백기사 White Knight
적대적 인수 위협을 받는 회사를 도와주는 우호적 제3자. 여기서는 최 회장 편에 선 베인캐피탈이 백기사 역할을 했다.
가격 전쟁 ― 치솟는 공개매수가
싸움은 곧 머니 게임이 됐다. 한쪽이 공개매수가를 올리면 다른 쪽도 따라 올렸다. 주당 가격은 60만 원대에서 시작해 8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고려아연 주가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일반 주주에게는 호재였지만, 양 진영에는 출혈이었다. 단 몇 %의 지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 원이 오갔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치킨 게임'이었다.
의결권 Voting Right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찬반 표를 던질 권리. 원칙은 1주 1표. 비싼 값을 치르고 주식을 모으는 이유는 결국 이 '표'를 모으기 위해서다.
단, 자사주·상호주 등 일부 주식은 의결권이 제한된다. 그래서 "몇 주를 가졌나"보다 "의결권 있는 몇 주인가"가 진짜 점수판이다.
증자의 덫 ― 유상증자 논란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난 직후, 고려아연이 던진 다음 수는 유상증자였다. 새 주식을 대량 찍어 일반공모로 팔겠다는 것. 그러나 "방금 비싼 값에 자사주를 사놓고, 이제 와 새 주식을 싸게 푼다"는 모순에 시장이 들끓었다.
주가는 급락했고, 소액주주들이 분노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에 제동(정정 요구)을 걸었고,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 방패가 부메랑이 된 순간이었다.
유상증자 · 일반공모 Paid-in Capital Increase / Public Offering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 주식을 찍어 돈을 받고 파는 것. 자금을 조달하는 정상적 수단이다.
일반공모 방식은 기존 주주뿐 아니라 불특정 일반 투자자에게도 새 주식을 판다. 누가 새 주식을 사느냐에 따라 지분 구조와 표 싸움 판세가 통째로 바뀔 수 있다.
경영권 분쟁 중의 증자는 "내 편에 새 주식을 몰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이번 증자도 거센 역풍을 맞았다.
금융감독원 · 자본시장법 FSS / Capital Markets Act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자본시장을 감독하는 기구. 증권신고서가 불충분하면 정정을 요구해 발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그 근거가 자본시장법(공개매수·증자·공시 규제)이다.
분쟁 양측의 행위가 "적법했는가"는 결국 자본시장법의 잣대로 판가름 난다.
표의 대결 ― 주총·집중투표제·위임장
전장은 주주총회로 옮겨갔다. 양측 지분이 백중세였기에, 승부는 표 한 장 한 장에 달렸다. 영풍·MBK는 이사회를 장악하려 했고, 최 회장 측은 이를 막아야 했다. 이때 핵심 무기로 떠오른 것이 집중투표제와 위임장 대결이었다.
이사회 · 임시주주총회 Board / EGM
이사회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로, 과반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경영권의 실질이다. 임시주주총회는 정기 주총 외에 필요할 때 소집하는 주총으로, 분쟁 중엔 이사 선임을 위해 자주 소집된다.
집중투표제 Cumulative Voting
이사를 여러 명 한꺼번에 뽑을 때 쓰는 특별한 투표 방식. 1주에 (뽑을 이사 수)만큼의 표를 주고, 그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다.
예: 이사 3명을 뽑으면 100주 가진 주주는 300표를 얻고, 이를 한 후보에게 다 몰 수 있다. → 소수파도 자기 측 이사 1명을 당선시키기 쉬워진다.
그래서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제도다. 이번 분쟁에서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느냐"가 이사회 구도를 가르는 뜨거운 안건이 됐다.
위임장 대결 Proxy Fight
주총에서 직접 못 오는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내 편 표로 만드는 경쟁. 특히 표가 흩어진 소액주주·기관투자자의 위임장을 누가 더 모으느냐가 승부처가 된다.
국민연금 등 기관의 한 표가 캐스팅보트가 되기도 한다.
끝나지 않은 싸움 ― 법정으로, 그리고…
승부는 한 번의 주총으로 끝나지 않았다. 양측은 가처분 신청을 주고받으며 법정으로 갔다. 자사주 처분의 적법성, 의결권 제한 여부, 증자의 위법성 — 쟁점마다 법원과 금융당국의 판단이 필요했다.
가처분 신청 Provisional Injunction
본안 소송 결과를 기다리기엔 늦을 때, 법원에 임시 조치를 구하는 것. 경영권 분쟁에서는 "특정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 "주총 안건 상정을 막아 달라" 같은 형태로 자주 쓰인다.
가처분 한 건의 인용·기각이 주총 표 계산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어, 사실상 '본 게임 전의 본 게임'이다.
상호주 의결권 제한 Cross-Shareholding Limit
회사들이 서로의 주식을 일정 비율(예: 10%) 넘게 보유하면, 그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된다. 고려아연과 영풍이 서로 지분을 갖고 있어, "누구의 어떤 주식이 의결권을 갖느냐"가 첨예한 다툼거리가 됐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이 그림책의 작성 시점(2026년 6월) 기준으로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70년 동업은 끝났고, 한국 자본시장은 '경영권 방어 vs 주주가치', '국가기간산업 vs 사모펀드 논리'라는 묵직한 질문을 떠안게 됐다.
📰 이 그림책을 만든 이유 — '기사 밀어내기' 분석을 위하여
경영권 분쟁은 보도자료 전쟁이기도 하다. 양 진영이 매일 자료를 뿌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비슷비슷한 기사를 쏟아낸다. 같은 사실을 다룬 기사가 표현만 바꿔 무더기로 생산되는 '기사 밀어내기(churnalism)'가 일어나기 쉬운 전형적 국면이다.
이 사건을 분석하려면 먼저 맥락을 알아야 한다.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가 왜 다른 사건인지, "집중투표제"가 왜 폭발력 있는 단어인지 모르면, 임베딩·코사인 유사도 점수가 같아도 그게 진짜 같은 내용인지 판단할 수 없다. 이 그림책은 그 맥락을 빠르게 머리에 넣기 위한 도구다.
유사도 분석 시 주목할 핵심 키워드: